지난 글에서 당근의 리브랜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돌아보며 회고록의 첫 삽을 떴습니다. 총 3개 Phase에 걸쳐 진행된 리브랜딩 배경과 과정을 간단히 소개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각 Phase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전략을 통해 당근다운 이미지를 만들어갔는지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당근은 빠르게 성장하며 조직 체계와 서비스가 복잡하고 거대해졌습니다. 담당자가 늘어난 만큼 당근의 브랜드 정체성과 시각 이미지도 다양해졌고, 브랜드 요소를 더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있었죠. 따라서 리브랜딩 목적은 ‘당근’으로 서비스명을 변경하면서 지역 생활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언하는 것에서 나아가, 조직과 서비스의 스케일업을 견디기 위한 실질적인 토대를 다지는 것에도 있었는데요. 당근다움의 핵심을 찾아 명확히 정의하고, 다양한 브랜드 요소를 확보해 나간 여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당근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해관계자 인터뷰였습니다. 여기서 이해 관계자는 경영진, 서비스 리더 그룹을 비롯한 주요 실무진, 브랜딩, 마케팅 소속 실무진을 포함합니다.
브랜드의 비전, 이미지, 디자인에 해당하는 질문의 카테고리를 구성하고, 약 6주에 걸쳐 한 그룹씩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전체 인터뷰 대상자는 약 70명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브랜드의 상위 방향성을 정할 때 CEO의 권한만으로 결정하거나, 소수의 그룹 안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이죠. 뒤이은 무드보드 워크샵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수의 관계자가 참여했습니다. 이런 접근은 당근이 일하는 방식 중 하나인 수평적 소통 문화를 따르는 차원만은 아니었습니다.
당근이라는 브랜드 자산은 많은 구성원의 노력과 애정으로 빚어진 것으로, 이들의 마음속에 현재 당근이 어떤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그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과정에 충실할수록 조직 전체가 인식해 온 당근과 서로 이질감이 들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고요.
인터뷰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오갔지만, 핵심은 결국 ‘무엇이 당근다운 것인가’ 였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철학적인 질문에 쉽게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 답이 같지도 않았습니다. 저마다 사업적인, 엔지니어링적인, 혹은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지식에 빗대어 표현한 대답 속에서도 공통된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당근에는 다른 IT 서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이 존재하며, 그것이 당근을 당근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었죠.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당근만의 정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당근 사용자들의 경험과 서비스 철학이 맞닿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듯했습니다.
리브랜딩 TF는 내부 관계자 인터뷰와 그간 모아온 브랜드 인덱스 자료를 바탕으로, 당근의 핵심인 ‘따뜻함’이라는 키워드를 여러 각도에서 해부하며 이것이 가진 의미에 대해 오랜 기간 토론했습니다. 따뜻하다는 표현이 은유하는 것은 결국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서로에게 베푸는 온정과 친절, 호의, 이로써 쌓는 상호 신뢰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이는 동네 이웃 간 느슨하고 안전한 연대를 만들어가는 당근만의 차별적 가치인 동시에 사회의 보편적 가치이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해 당근 브랜드 핵심가치인 Local, Connect, Life와 ‘함께 사는 방법’이라는 리브랜딩 캠페인 타이틀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현실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태도와 느낌, 정서는 ‘당근답다’로 인식되는 많은 유무형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최초에 이것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브랜드 개성 측면에서 시각적 상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키워드와 이미지들을 함께 놓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각화, 즉 브랜드의 의미와 철학을 물리적인 세계에 나타내는 작업인 Phase 2의 시작을 알리며 마음속 당근을 꺼내 보는 ‘무드보드 워크샵’을 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무드보드’라 하면 특정 디렉션과 스타일에 따라 디자이너가 시각적으로 일체감 있는 이미지를 매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번 워크샵은 다수의 브랜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마케터, 마케팅 디자이너가 두루 참여하며 각자 자신이 인식한 브랜드 이미지를 공유했습니다. 서로가 느낀 이미지의 유사성과 간극의 정도,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죠. 비주얼 디자인의 밑바탕이 될 정제된 무드보드와는 또 다르게, ‘함께 만든’ 무드보드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브랜드의 독특성과 이미지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또 브랜드를 가꿔가는 다양한 작업자들 간의 얼라인먼트를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