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당근 마케터의 일의 기쁨과 슬픔

문화 | 2023-07-13
1년차 당근 마케터의 일의 기쁨과 슬픔_포스트썸네일

저녁 운동을 마치고 남은 업무를 처리하러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내 책상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꽃다발이 담긴 봉투에는 입사 1주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적힌 정사각형 메모가 클립으로 끼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귀여운 파운드 케이크가 담긴 크라프트지 상자와 축하 카드도 놓여 있었다. 스누피가 그려진 카드만 봐도 팀 리더인 Nicole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생일도 잘 챙기지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이지만, 원체 밀도 높은 당근마켓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탓인지 순간 여러 감정이 일렁였다. 

당근마켓 마케팅 팀에 합류해 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한 지 1년, 내게 이곳은 “인풋도 크고 아웃풋도 큰 일터”다. 해보고 싶은 일도 많고 할 기회도 많은 만큼, 잘 해내려면 그에 맞게 노력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과 삶을 칼로 썬 듯 구분하려는 시도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일에 집중하고 기꺼이 몰입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오전 10시~11시쯤 출근해 저녁 7시~8시 운동을 가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10~11시까지 업무를 보고 집에 가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습관처럼 ‘야근’을 하게 된 것인지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려했지만, 틈을 내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의 낙차에 무뎌질 즈음 1주년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던 것이다. 

잘 하고 있는 걸까?

며칠 후, 혼자서만 반문하던 질문을 팀 사람들과 나눠봄 직한 일이라는 자각이 문득 든 날이 있었다. “오늘 같은 날 한강에 가서 캔맥주 하나 까먹으면 너무 행복하겠다” 싶던 어느 포근한 봄날이었는데, 그날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팀원들이 저녁을 먹은 후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왜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욕심과 애정, 열정도 있었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회의가 많다”는 것이었다. 당근마켓은 보통 목적 조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마케팅 팀은 그중 몇 안 되는 기능 조직으로서 다양한 버티컬 서비스들의 마케팅을 수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가 파악해야 하는 일의 맥락이 많았고, 여러 회의가 오전과 오후 시간을 빵빵하게 차지하고 말았다. 회의들을 마치고 나면 마케팅 팀 동료들과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은 정작 하루 중 오후와 저녁 사이 뿐이었고, 업무를 정리하고 실무를 처리하는 시간은 저녁 식사 후로 밀리기 일쑤였다. 또 팀 구조와 서비스가 빠르게 바뀌고 성장하면서,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반복된다는 문제도 있었다. 

타자기 소리만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다가도 어느새 돌아앉아 너스레를 떨며 깔깔 웃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는 하는 우리 팀답게, 우리는 이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기로 했다. 하나둘 문제 상황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라는 큰 물음에 마주하게 됐고, 우리의 일하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공감대가 생겨났다. 어느 나른한 오후, 장난기 가득한 브랜드 마케터 Jerome이 팀원 사이를 기웃기웃 걸어가다 말을 꺼냈다.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를 가져 보면 어떨까요?

사실 캘린더를 가득 채운 회의 스케줄들을 비집고, 모두의 2시간씩을 팀의 업무/협업 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논의가 우리 팀에게 도움닫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더 크기도 했다. 회의 준비와 퍼실리테이팅을 도맡아 진행한 마케팅 팀 리더 Nicole이 이 회의에 붙인 이름은, 당근마켓과 같은 서비스에서 일하는 마케터의 이야기를 담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 제목과 같이 “일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부제는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고 있나요?”였다. 

성향에 따라 이런 회의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함께 일하는 경험”이 따뜻하고 찬란한 경험으로 남기를 바라는 우리는 회의에 꽤 진지하게 임했다. 이 회의를 더 잘하기 위한 여러 고민에도 진심이었다. 회의 전 익명 설문들을 받아 솔직하게 문제를 나열해 보자는 제안도 나왔고, 문항은 대략 아래와 같이 꾸려졌다.

  •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 업무를 하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 최근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 우리는 과연 신뢰와 충돌을 잘 하고 있을까요?
  • 시너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른 팀원들에게 이 회의가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개개인의 시각에 담긴 직장생활의 고락(苦樂)이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다. (아마 우리 퍼포먼스 마케팅 파트 Aesop일 것으로 생각되는) 누군가는 팀원들과 함께 장어 덮밥 회식을 하고 봄볕을 쐬며 회사로 걸어 돌아온 날이 가장 행복했다고 적었고, (아마 브랜드/콘텐츠 마케터 Linda일 것으로 생각되는) 누군가는 기획한 콘텐츠에 유저들이 찐으로 감동했다는 후기를 와구와구 달아주던 날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 (아마 퍼포먼스 마케팅 파트 Jace일 것으로 생각되는) 누군가는 공들여 짠 쿼리가 성공적으로 돌아가 원하는 데이터를 뽑은 순간에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나는 우리 퍼포먼스 마케팅 파트 사람들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회의를 이어가며 토론을 할 때 즐겁다고 적었고, 무조건 배려하는 의사소통보다 조금 더 충돌하더라도 효율적인 의사소통에 무게를 더 두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도 답했다.

답변만 보고도 누가 쓴 것인지 단번에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업무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며 함께 깔깔 웃기도 했다. 시너지에 대한 답변들을 보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일함으로써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결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또 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논의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두 가지 정도가 뚜렷하게 보였다. 하나는 우리 팀 사람들이 일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해보는 것, 잘 못하던 일을 잘하게 되는 것, 실패한 일에서 배움을 찾는 것,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에서 일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팀으로 함께 일할 때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팀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우리 팀 누군가가 잘 알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불안함보다는 든든함을 느끼고, 자신의 관점 밖에서 늘 새로운 제안을 해주는 동료가 있기에 언제나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팀이었다.

물론 그날의 이야기들이 반짝반짝한 희망으로만 가득 찬 것은 결코 아니다. 팀원들이 적어 내려간 답변에는 쉽지 않은 여정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반복되며 생긴 슬럼프, 더 나은 결정을 위해 치열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생긴 감정의 파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각자의 마음에만 갇혀있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찔했다. 고난과 어려움을 나누다 보니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과 협업의 경험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돌아보며 우리는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간에 일어난 신뢰와 충돌이 켜켜이 쌓여 팀의 경험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함께 일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우리는 달성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고 있으며, 이 여정의 끝에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쌓일 것이라는 믿음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날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나는 아직도 종종 곱씹어 본다. 그날 이후 마법처럼 정시 퇴근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공통의 목표에 진심이고, 함께 할 때 더 잘할 수 있다는 경험치를 쌓고 있다는 그라운드 룰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조금 더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서로의 업무 방식과 아이디어에 대해 반문해 봐도 되겠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치열한 고민과 날 것의 논의들은 때로 작두 위 곡예처럼 아슬아슬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일터에서 생기는 여러 고민은 서로의 성숙함에 믿고 맡길 줄 아는 게 진짜 신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또 함께 일의 기쁨과 슬픔을 겪으면서 오늘도 당근마켓 마케터로서 즐겁고 또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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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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