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의 리브랜딩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비스 | 2024-01-31
당근의 리브랜딩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_포스트썸네일

2023년 여름, ‘당근다움’을 더욱 선명히 하는 리브랜딩을 통해 우리는 ‘당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첫걸음을 뗐습니다. 지난했던 여정을 돌아보는 글을 한 편 쓰고 싶다고 다짐했으나, 리브랜딩 이후의 전략들을 하나둘 수행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네요. 당근 팀은 리브랜딩을 계기로 더욱 단단하고 당근다워진 모습으로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첫 브랜드 디자이너로 당근에 입사해 20여 명의 리브랜딩 TF를 이끌기까지, 만만했던 순간은 없었는데요.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나아갔던 그 2년간의 여정을 톺아보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리브랜딩, 그 여정의 시작 

2020년, 브랜딩팀 슬랙 채널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창업자이자 공동대표인 Gary가 남긴 글이었습니다. ‘앱 이름을 당근마켓에서 당근으로 바꿔 볼까요?’ 이 한 줄의 제안을 시작으로 당근의 리브랜딩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즈음, 저는 입사 5개월 차 당근 뉴비이자 브랜딩팀의 첫 번째 브랜드 디자이너였습니다. 당근에 오면서 ‘언젠가 리브랜딩 하겠지’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당근’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용자들이 하나둘 당근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한 덕분도 있겠지만, 당근이라는 이름에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근이 처음 시작된 2015년, 지역 생활 커뮤니티에 진심이었던 창립 멤버들은 ‘당신 근처’의 줄임말인 ‘당근’으로 서비스명을 짓고 싶어 했지만, 야채 이름의 서비스명이 다소 파격적이라 중고 직거래를 뜻하는 ‘마켓’을 붙여 ‘당근마켓’으로 시작했다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8년의 경험이 겹겹이 쌓인 서비스 이름을 바꾸는 것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마켓’을 그냥 떼어버리고 마는 게 아니라, ‘왜’ 떼었는지 내외부 고객에게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가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필요했죠. 

같은 해 가을 막 입사한 브랜드마케터 Jerome과 리브랜딩의 문을 여는 담론을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브랜딩 여정이 한눈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당근마켓’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던 때여서, 내부에서도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 자체를 어색하게 느끼는 구성원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서비스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때였습니다.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MAU가 700만에서 1400만으로 로켓 성장했던 시기였으니까요. 팀 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장하는 조직에서 브랜딩을 이야기하다

우선순위, 그것이 문제로다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변하고 대응해야 할 일도 넘쳐납니다. 측정할 수 있는 목표와 성과를 위해 달리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어떤 이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호사스러운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기업의 인하우스 조직에서 전사 리브랜딩과 같은 장기 구축성 프로젝트를 운영 업무와 병행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인데요. 당근처럼 브랜딩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조직에서조차 그 균형을 쉬이 맞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고거래를 넘은 로컬 커뮤니티로서의 포부를 간직한 채, 2020년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우선순위 테이블 중 2번, ‘중요한데 시급하지 않아 언제 할지 결정해야 하는’ 업무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장하는 조직에서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우선순위 2)’은 ‘중요하고 시급한 일(우선순위 1)’에 패한다. 그리고 브랜딩팀은 다른 조직들의 우선순위 1번 업무가 집결하는 곳이다.

성장하는 조직에서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우선순위 2)’은 ‘중요하고 시급한 일(우선순위 1)’에 패한다. 그리고 브랜딩팀은 다른 조직들의 우선순위 1번 업무가 집결하는 곳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브랜드 자산은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였고, 고객이 보는 많은 것들이 브랜드 디자인의 통제 범위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네이밍 문제 말고도 당장에 브랜드적으로 규정이 필요한 사안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죠.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마치 달리고 있는 차의 바퀴를 갈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해내야 했습니다. 

급격히 늘어가는 운영 업무와 성장 과제 속에서, 저와 동료들은 ‘린(Lean) 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Lean, 브랜딩에서도 이게 된다고?

출처 https://blog.crisp.se/2016/01/25/henrikkniberg/making-sense-of-mvp

출처 https://blog.crisp.se/2016/01/25/henrikkniberg/making-sense-of-mvp

위 그림은 당근에 입사하면 신규 입사자 교육 때 만나게 되는 그림입니다. 린 애자일 방법론에서 언급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최소기능제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시이죠. 첫 번째 방법은 자동차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바퀴, 차체 등 부분 요소를 단계별로 추가해 갑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일단 ‘바퀴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제품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가죠. 첫 번째 방법은 자동차를 만드는 긴 시간 동안 사용자가 이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두 번째 방법은 당장 탈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제공하고 이를 발전시키며 결과적으로 사용자에게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당근의 모든 서비스는 이 두 번째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MVP 개념을 브랜딩 업무에 적용한다면, ‘당장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소만으로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로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브랜드 자산의 활용 정책이나 가이드가 마련되지 않았어도, 이 룩앤필(Look and Feel)이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여 좋은 브랜드 경험을 만들고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걸까요? 브랜딩에서 ‘최소’는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소프트웨어 제품과 달리, 브랜딩이라는 인식 게임에서는 뇌리에 박힌 인상, 그것이 곧 브랜딩이 됩니다. 자동차 회사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바퀴 회사 혹은 킥보드 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생길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린 브랜딩 과정에서 퀄리티를 타협하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선택지이며, 타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린 브랜딩도 처음부터 성능과 디자인이 완벽한 자동차를 내놓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매번 어쨌든 '자동차'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최소 기능부터 선보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과 다른 점이다. (그림 Rachel)

린 브랜딩도 처음부터 성능과 디자인이 완벽한 자동차를 내놓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매번 어쨌든 '자동차'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최소 기능부터 선보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과 다른 점이다. (그림 Rachel)

당근 브랜딩 조직이 받아들인 ‘린 브랜딩’ 방식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위와 같습니다. 린 브랜딩에서는 킥보드만 만들어낼 순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좋은 자동차를 꿈꾼다면 적어도 모든 과정에서 그럴싸한 자동차를 만들어 내야 하죠. 당장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합의해 가면서도 장기적으로 완성할 그림을 잘 이해하며 끝내 완성해 내는 것, 그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린 브랜딩은 IT 스타트업 문화에 어렵게 적응해 낸 또 하나의 브랜딩 방법론으로 자리 잡습니다.

장기적인 구축과 현재에 충실한 발산, 둘 사이의 힘겨운 줄다리기가 이어졌지만 이는 한편으로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브랜드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실체, 즉 서비스를 투영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역동적으로 커 나가는 서비스를 브랜딩 할 때는 그 역동성이 반영되기 마련인 것이죠. 따라서 당근의 많은 브랜딩 과제들은 멈춰 있는 가이드보다, 살아있는 맥락 위에서 답을 찾게 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브랜딩이 이처럼 서비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역동성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선명한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중심부가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비스와 조직이 스케일업을 맞이한다면 결국 취약해져 파편화되고 크리에이티브는 이탈되어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문제 인식에서 이번 리브랜딩은 당근 안의 구심점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가리킬 수 있는 대내외적인 모멘텀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리브랜딩에 발을 내딛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던 2021년 7월, 경영진과 전사 리더가 모인 미팅에서 드디어 리브랜딩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합의했고, 그렇게 ‘당근다움’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당근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당근의 리브랜딩은 크게 3개 Phase를 거쳐 진행되었습니다. 

  • Phase 1 Research & Verbal Identity: 브랜드 인식 조사, 문제 정의 및 변화 폭 설정, 언어적 정체성 정의
  • Phase 2 Visual Identity: 비주얼 요소 진단, 무드보드, 서체 디자인, 심볼 & 디자인 가이드
  • Phase 3 Campaign & Application : 브랜드 필름 & BI 영상, 랜딩페이지 & 프로모션, 블로그 아티클, BI 교체 배포

각 Phase별 업무들을 타임라인 위에 놓고 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대략 아래와 같은 흐름을 지나온 걸 알 수 있습니다.

Phase1은 천천히 갔지만 신중하게, Phase2는 외부 협력을 병행하며 속도감 있게, Phase3는 온 구성원들의 일사불란한 협력으로 완성했다.

Phase1은 천천히 갔지만 신중하게, Phase2는 외부 협력을 병행하며 속도감 있게, Phase3는 온 구성원들의 일사불란한 협력으로 완성했다.

시기별로 각 업무 단위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리소스를 팀 내외적으로 배치하며, 전체적인 프로세스가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각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편 아티클에서 더 자세히 다뤄볼 예정입니다.


당근 리브랜딩의 핵심은 지금까지 쌓아온 소중한 유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비전을 ‘더 당근답게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새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품 개발로 생각해 보면, 복잡하게 얽힌 레거시를 변형해 사용하는 것보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게 더 빠른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전국의 당근 이웃들과 가까운 유대 관계를 맺어오며 대중의 긍정적인 인식을 높였던 당근은 사실 완전히 새로워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심미성이 변화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되었죠. 그럼 당근은 왜 리브랜딩을 결심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걸까요? 리브랜딩의 당위성은 아래 질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Q. 서비스 이름이 우리의 비전을 반영하고 있는가? 

이름은 브랜드의 시작입니다. 그 시작에는 우리의 지향성과 고객 가치가 담겨 있거나 적어도 그 방향을 인지하는 데에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당근마켓’에서 ‘마켓’은 중고거래만을 의미하고 있었고, 동네생활, 알바, 비즈니스 등 다양한 지역 기반 서비스를 포괄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Q. 브랜드의 긍정 인식이 브랜드 정체성에 반영되었는가?

리뉴얼을 준비하며, 우리는 기존 BI(브랜드 정체성·Brand Identity)가 브랜드의 긍정적 이미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근이 지금의 브랜드 위상을 얻게 된 데에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설계한 브랜드 전략에 의한 것보다는 당근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웃들의 긍정적 경험이 쌓이고 퍼진 것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용자의 경험은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며, 당근의 브랜드 이미지(인식)을 이루는 것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당근에 대해 가지는 긍정적 인식(Images)이 다시 브랜드 정체성(Identity)으로 하나 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고민과 촘촘한 설계가 필요했습니다.

리브랜딩 과정을 통해 당근 팀은 인식과 표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내/외부 고객이 당근을 당근으로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깊게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우리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순도 높게 거르기를 반복했어요. 이 작업은 기나긴 리브랜딩 여정의 3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브랜드 리뉴얼의 이정표를 세우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당근의 리브랜딩은 브랜딩 관련 구성원들이 모인 TF로 시작하여, 단계별 미션에 맞는 협업 그룹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밟아갔습니다. 약 2년간 누적 100여 명에 가까운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한 리브랜딩은 당근에서 본 적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협업 프로젝트였는데요. 많은 기업에서는 인하우스 조직의 시간적, 인적 자원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함과 동시에 외주화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근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인원이 기꺼이 함께 했던 걸까요?

리뉴얼 과제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통상 어떤 브랜드의 새 로고가 아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아했던 그 이미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을 때일 것입니다. 당근의 리브랜딩은 ‘더 다르게’가 아니라 ‘더 선명하게’ 하는 과제로서, ‘따뜻함'이라는 단어 아래 숨겨진 당근만의 독특한 심상을 아주 잘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우리 스스로도 이해하거나 정의하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제시한 것이 우리 브랜드에 맞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우리 브랜드를 가장 잘 아는 건 내부 구성원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각자가 가진 심상이 아직 제각각이라 할 지라도 그 스펙트럼을 아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들을 가다듬고 공유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쉬운 방법은 아니었지만, 조직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브랜드 정체성을 한 겹 한 겹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리브랜딩의 아웃풋인 BI, 서체, 브랜드필름, UI 모두가 하나의 일관된 방향성 안에서 총체적인 경험으로 제공될 수 있었던 것이죠.

치열했던 리브랜딩은 그 시작에서부터 우리만의 시야로, 당근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떠났던 의미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식과 감각을 선명하게 해 나가는 실무의 과정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Rachel

Branding Team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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